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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안내

발해역사관 상설전시

발해역사관 상설전시 _ 정효공주 고분
정효공주 무덤에 깃든 발해의 신비

정효공주 무덤은 벽돌돌방무덤[塼築石室墳]으로 벽돌로 쌓은 당나라 양식과 돌로 공간을 줄여나가면서 천장을 쌓는 고구려 양식이 결합되어 있다. 또한 무덤 위에 탑을 쌓는 방식은 무덤 위에 건물을 짓던 풍습이 불교와 습합되어 발해만의 독특한 무덤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무덤의 널방[墓室:玄室]에 벽화로 그려진 12명의 인물들은 무사(武士), 시위(侍衛), 내시(內侍), 악사(樂士) 등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주인공인 정효공주의 모습은 그려져 있지 않다. 인물은 대체로 뺨이 둥글고 얼굴이 통통한 당나라 화풍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사실적 기법으로 표현되어 발해인의 외모와 생활상을 잘 보여 준다.

정효공주 묘지(墓誌)는 정혜공주 묘지와 함께 발해인이 남긴 진귀한 발해사 연구의 1차적인 사료(史料)이다. 특히 발해의 국가 기틀이 확립되던 문왕(文王)시대의 정황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문왕의 넷째 딸로 정효공주가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이 확인되었을 뿐 아니라, 문왕의 존호(尊號)가 ‘대흥보력효감금륜성법대왕(大興寶曆孝感金輪聖法大王)’ 이었으며, 그가 대흥(大興)이란 연호를 사용하다가 도중에 보력(寶曆)으로 개원(開元)하였고, 다시 말년에 대흥으로 복귀하였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그리고 문왕에 대해서 황상(皇上)이란 칭호를 사용하였던 사실은 그가 당시에 황제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중국측에서 발해가 당나라의 지방정권에 속한다는 논리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근거를 제공해 주었다.

묘지문에는 유교 경전을 비롯하여 중국의 문학 작품들이 다양하게 인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문왕 시대에 유학의 수준이 높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존호 가운데에 사용된 ‘금륜성법(金輪聖法)’은 불교적인 용어로서 문왕이 전륜성왕(轉輪聖王)을 표방하였던 사실도 보여준다. 이러한 불교적 요소는 무덤 위에 탑을 세우는 탑장(塔葬)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데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정효공주를 칭송하기 위해 한나라 때의 고사를 잘못 인용한 예도 있어서, 당시 발해 문학의 한계성을 반영하고 있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