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안내
발해역사관 상설전시
벽화는 석실 내부의 벽에 백회를 바르고 그 위에 열두 사람의 인물을 채색으로 묘사했는데, 인물의 윤곽을 스케치하는 방법만 다를 뿐 모든 회화기법은 고구려의 프레스코 전통화법에 이어지고 있다.
무덤은 안길과 안칸으로 이루어졌는데 벽화는 안길의 뒷부분과 안칸의 동, 서, 북쪽의 벽에 그려져 있다.
벽화는 처음에 예리한 긁개같은 것으로 윤곽을 표시한 다음 적 청녹, 흑, 백색 등 여러가지 색깔을 고르게 입하고 다시 먹선으로 윤곽을 명료하게 나타내는 방법을 썼다. 이것은 고구려 수산리 벽화무덤 등 고구려 벽화에서 발휘된 전통적인 화법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다.
용도의 동서벽에 마주보고 서 있는 두 사람든 갑옷을 입고 어깨에 철퇴를 걸친 문지기 무사이다. 널방동벽의 네 사람 가운데 남쪽의 첫째 인물은 시위로 오른쪽 허리에는 칼과 화살통을 찼으며 다른 세 사람은 악기로 박판, 공후, 비파류의 악기를 들고있다.
얼굴표현 및 몸매로 보아 내시와 악기는 남자차림을 한 여자이다. 북벽의 두 인물은 공주의 호위를 담당하는 시종들로 허리에 화살통을 차고 어깨에는 활을 메고 있다. 널받침 남면의 벽화는 상서도의 일종이나 심하게 손상되어 사자의 머리 부분으로 보이는 일부만 알아볼 수 있다.
정효공주는 발해 제3대 문왕 대흠무의 넷째 딸이다. 그녀는 756년에 태어나 792년에 사망하고, 같은해 11월에 용수향 용해촌 용두산 발해 왕실 귀족 무덤지에 안장되었다. 묘는 묘도, 연도, 묘실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바로 탑 밑에 무덤을 설치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발해 특유의 묘제로서 중국의 경우 수 ㆍ 당대에 발견되기도 한다. 또한 무덤은 경사로로 내려가는 묘도, 연도, 묘실로 구성되어 있고 벽돌과 판석으로 이루어진 전실묘이다.
이러한 묘제는 기본적으로 동위 이후의 북조선시대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정효공주묘만의 독특한 구조가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아. 첫째, 정효공누묘의 묘도는 북조나 수당의 묘도와 같이 길지 않고 짧으며 묘실에 비하여 폭이 넓다. 또한 계단형으로 되어있는 점이 중국의 경우와 다르다. 둘째, 북조 및 수 ㆍ 당의 널방은 각 면에 있으며 가운데가 볼록한 방형으로 되어 있는 반면, 정효공주묘는 고구려고문처럼 각 면이 곧은 직방형으로 되어 있다. 셋째, 북조 및 수 ㆍ 당의 묘실천장이 궁륭형으로 되어있는 반면, 이 묘의 천장은 평천장으로 되어 있다. 이는 이 묘 위에 탑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편청장으로 처리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평천장은 2단의 평행고임 위에 설치한 것으로 고구려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