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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안내

발해역사관 상설전시

발해역사관 상설전시 _ 되살아나는 발해인
발해의 식생활

발해는 수렵과 목축업을 중심으로 하면서 지리적 조건에 따라 농업, 수산업도 발달하였으므로 다양한 식재료 생산이 가능하였다. 지리적으로 발해의 서부, 남부는 주로 농업, 동부는 농업 ㆍ 어업 ㆍ 수렵 ㆍ 목축, 북부에서는 주로 어업 ㆍ 수렵 ㆍ 목축에 종사하였고, 농업도 일부 지역에서 다소 발달하였다. 이때 주목할 점은 식재료(食材料)를 얻기 위한 생산 방법이 이전 삼국시대보다 발전하였다는 것으로 이에 따라 발해의 음식 문화 또한 발전하였다.

그릇

발해 유적의 집터와 그 주변에서는 발해인들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식기가 다량 발견되고 있다. 그 종류는 쇠솥, 쇠칼, 놋숟가락, 보시기, 단지, 접시, 버치, 시루, 독 등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발해의 유적에서 이렇게 다양한 그릇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솥에서 조리를 하고 여러 종류의 음식을 다양한 형태의 그릇에 담아 수저로 음식을 먹었던 발해인들의 음식 문화의 일부를 보여주고 있다.

구름모양 소반 (상경성)
구름모양 소반 (상경성)
토기파편 -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토기파편 -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삼채향로 (삼릉둔 4호분)
삼채향로 (삼릉둔 4호분)
식재료

육류 : 발해의 육류 획득은 주로 넓은 삼림지대에서의 수렵에 의한 것으로, 수렵은 고구려 시대부터 즐겼던 생활방식이었고 발해에서도 성행하였다. 이러한 수렵을 통해 토끼, 매, 꿩, 담비[貂], 사슴, 호랑이, 표범, 말곰[큰곰 비], 멧돼지[野猪] 등을 획득하였고, 이러한 획득물은 식용(食用), 의료(衣料) 등의 수요를 만족시키는 외에 수출품으로 당나라의 조정이나 일본에서 환영받았다.
또한 발해인들은 돼지, 소 등의 가축을 기르기도 하였다. 특히 발해인들은 돼지고기를 즐겼는데, 예전의 부여국 자리였던 발해 막힐부 지역의 돼지는 유명했다.

농산물 : 발해의 농업은 서부의 송화강·압록강·목단강 유역과 기후가 따뜻하고 땅이 비옥한 남부의 평야지대에서 발달하였는데, 다양한 종류의 곡식, 야채 및 과일 등이 많이 생산되었다.
발해의 여러 유적지에서는 쇠괭이, 쇠삽, 쇠낫과 같은 철로 만든 농업 생산 기구가 출토되어 발해에서는 철기가 농산물을 수확하는데 광범위하게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발해의 농업 생산력이 향상되었다.
수확된 곡식류는 지리적 특징에 따라 기후가 낮고 무상기가 짧은 북쪽 지역은 보리, 밀, 메밀 등이 주로 재배되었고, 이 외에 조, 콩, 피, 수수 등이 생산되었다. 반면 기후가 따뜻하고 땅이 비옥하고 물이 풍부한 남부 지역은 벼를 심었다. 특히 문헌 기록에, 책성 지역의 된장, 노성 지역의 벼 등을 발해의 특산물로 기록하고 있어 곡식류 중에서도 콩, 벼가 좋은 품질로 대량 생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과일은 발해 낙유의 배와 환도의 오얏(자두의 다른 이름)이 유명했고, 이 밖에 채소, 인삼, 잣, 꿀도 생산되어 식생활 재료로 사용되었다. 이 중 3대 문왕이 일본 성무천황에게 보낸 국서에 “약홀주도독 서요덕을 통해 가죽과 인삼 30근, 꿀 3곡”을 보낸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인삼 30근(1근=600g)은 현재의 단위로 18kg, 꿀 3곡(1곡=10말, 1말=18.039ℓ)은 541.17ℓ에 해당되는 분량에 해당된다.

수산물 : 발해는 동쪽의 바다와 송화강, 목단강, 흑룡강, 우수리 강 및 경박호, 홍개호, 송화호 등 많은 강과 하천, 호수들이 발달하여 다량의 수산물 채취가 가능하였다. 이 지역은 말갈족이 발해 건국 이전부터 거주하고 있던 곳으로, 이들의 주요한 생산방식은 해·수렵(海獸獵)과 어로(漁撈)였다. 문헌에 기록된 대표적인 자원은 다시마, 숭어(치어), 낙지(석거), 말린 문어, 방해(대게), 교어, 고래 눈, 대모 등이 있다.
이 외에 수산물을 이용한 저장 음식인 포, 젓갈도 발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