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안내
발해역사관 상설전시
발해무덤은 널방[墓室:玄室]의 규모와 구조 형식, 축조 재료 등에 의해 크게 나누어 돌무덤[石築墓], 흙무덤[土壙墓], 벽돌무덤[塼築墓]으로 구성되어 있다. 돌무덤은 다시 돌방무덤[石室墓], 돌덧널무덤[石槨墓], 돌널무덤[石棺墓]으로 분류되어진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은 돌무덤에 속하는 돌방봉토무덤[石室封土墓]으로 고구려 후기 양식을 거의 그대로 계승한 것이다. 발해 초기에는 화장(火葬) 방식이 유행하였고, 동물 뼈를 사람과 함께 묻는 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이 풍습은 중기 이후에 사라졌다. 또한 발해에는 무덤 위에 건물을 짓던 풍습이 있었는데, 봉토 위에 주춧돌과 기와들을 세우거나 벽돌로 만든 탑을 세운 무덤이 있다.
돌을 이용하여 무덤을 쌓는 방식은 원래 고구려적인 전통인데, 특히 주류를 이루는 돌방봉토무덤[石室封土墓]은 고구려 양식을 잘 계승하고 있다. 정효공주 언니인 정혜공주 무덤과 삼릉둔(三陵屯) 2호묘가 대표적이다.
벽돌무덤은 당나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서, 8세기 후반 무렵부터 발해의 상위 지배계층에서 수용하였지만 그 숫자는 많지 않다. 대표적인 것으로 정효공주(貞孝公主) 무덤과 마적달(馬滴達) 무덤이 있다.
흙무덤은 발해 건국 이전부터 유행하던 말갈 양식으로 발해의 변방지역에서 지속되었다. 유수 노하심 고분군이나 영길 대해맹 고분군이 대표적이다.
매장방식으로는 1인장, 2인합장(合葬), 다인(多人:여러 명)합장이 모두 나타난다. 2인합장은 부부합장(夫婦合葬)이 대부분이다. 다인합장(多人合葬)은 발해만이 갖는 매장 풍속의 특색으로서 한 무덤에는 많게는 17명까지 묻혀 있다. 이때 함께 묻은 사람들 중에는 주인공 가족뿐 아니라 그에 딸린 가솔 노비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순장(殉葬)의 유풍(遺風)으로 볼 수 있다.